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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製藥救世'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 영면…합성 항생제 선구자

어렵던 회사 기틀 다지고 '팔수록 손해' 수액에 투자…한국제약협회장으로서 신약개발 기여, 의료 복지·장애인 예술에도 지원

유율상 master@newsmac.co.kr | 기사입력 2023/04/30 [14:54]

'製藥救世'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 영면…합성 항생제 선구자

어렵던 회사 기틀 다지고 '팔수록 손해' 수액에 투자…한국제약협회장으로서 신약개발 기여, 의료 복지·장애인 예술에도 지원

유율상 master@newsmac.co.kr | 입력 : 2023/04/30 [14:54]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이 90세 일기로 30일 영면했다. 

 

故 이종호 명예회장은 1945년 광복둥이 기업으로 탄생한 JW중외제약에서 ‘제약구세(製藥救世)' 일념으로 필수약부터 혁신신약까지 ‘약 다운 약’을 만들어 국민건강을 지키는 ‘제약보국(製藥保國)' 실현에 앞장섰다는 평가다.

            故 이종호 JW중외그룹 명예회장

1966년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故 이 명예회장은 1969년 국내 처음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합성 항생제 ‘리지노마이신’ 개발에 공헌했다.

 

합성 항생제 선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어렵던 회사 기틀을 다지고, 국내 제약산업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리지노마이신은 1973년 12월 영국 약전(B.P)에도 수록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1969년 5월19일 발명의 날에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항생제 합성 부문에서 성공을 이뤘던 그는 1974년 당시 페니실린 항생제와 연관돼 최신 유도체로 평가받던 피밤피실린 합성과 함께 ‘피바록신’을 개발, 기술력을 입증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국외 선진 기술을 도입, 국내 제약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머크, 애보트 등 유럽 및 미국 주요 제약사들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 기술적 입지를 다졌다.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문 치료약 중심의 사업을 확대, 1970년대부터 이어진 고도성장의 기반이 됐다.

 

이어 1970년대 초반엔 기초원료 합성과 생산을 위한 연구에 집중, 국내 첫 소화성궤양 치료제 ‘아루사루민’, 진통·해열제 ‘맥시펜’, 빈혈치료제 ‘훼럼’, 종합비타민 ‘원어데이’ 등 신제품들을 시장에 선보이는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3년 2월 14대 한국제약협회장에 취임, ‘기업윤리관 확립’ ‘환경 변화 대응 능력 배양’ ‘협회의 조직기능 효율화와 위상 제고’의 3대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약가 관리 체계 자율화, 건전한 납품 질서 체계 확립, 회전 기일 단축과 적정 이윤 확보를 비롯해 윤리위원회 설치와 자정운동 강화, 신약개발 지원 정책 마련, 각종 행정 규제 완화 등의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했다. 

 

그는 회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수액 산업에도 투자했다.

 

1970년대에 수액 한 병 납품할 때마다 원가(原價)가 나오지 않아 팔수록 손해인 수액에 대해 사업을 이어갈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병원 불빛을 보며 “지금 이 순간에 저기서 꺼져가는 생명이 있는데 싶은 마음이 들면서 돈이 안돼 그만둔다는 건 말이 안된다”라며 선친이 몸소 실전했던 생명존중의 창업정신을 이어가 오늘이 됐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JW그룹은 1997년에 국내 처음으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Non-PVC 수액백을 개발, 친환경 수액백 시대를 열었으며, 2006년엔 1,600억을 투자, 충남 당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액제 공장을 신설, 글로벌 생산 기지를 구축했다. 

 

당시 그는 “내가 충남 당진에 1,600억 들여 1개에 1,000원 정도 하는 수액 생산공장 짓는다니깐 ‘우리 시대의 마지막 바보’라 했다”고 말했다.

 

JW그룹은 당진 수액공장을 기반으로 2019년엔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3체임버 종합영양수액 ‘위너프(수출명 : 피노멜)’ 완제품을 아시아권 제약사론 최초로 영양수액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 시장에 수출했다. 

 

1975년 당시 그는 중외제약의 사장으로 취임, 무엇보다 ‘신약개발’을 강조했다. 여기엔 “생명을 다루는 제약기업은 이윤도 중요하지만 약다운 약을 생산해야 한다”라는 창업정신이 밑바탕됐다.

 

그는 “신약개발로 벌어야지. 외국에 있는 약을 수입해 판매해 이윤을 많이 남긴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그는 작년 3월 한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신약 개발한다니 예전에 한 보사부 장관이 ‘안될 일에 왜 자꾸 돈을 쓰느냐’고 말리더라고요. 그 때 내가 그랬어요. ‘반도체 누가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거 아닙니까?’라고.

 

"반도체를 만드는 한국 사람은 있는데 신약개발하는 한국 사람이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같은 서울대 나와 누구는 반도체를 만드는데, 왜 약은 못 만들어. 내 생각은 확고해요. 단지 이런 건 있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연구개발(R&D)에 투자했듯 오너가 투자를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의약업계에서도 누군가 하면 돼요. 20년이고, 30년이고 실패를 하더라도 지치지 말고, 그게 신약개발의 키워드야”라고 강조했다.

 

이런 신념으로 그는 R&D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국내에 신약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1983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6년엔 신약개발 연구조합 초대 이사장에 추대돼 업계 공동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향상과 글로벌 진출 기반 구축 등 국내 제약업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92년엔 오늘날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국내 첫 합작 바이오벤처인 C&C신약연구소(현 JW중외제약 지분 100%)를 일본 주가이제약과 50:50 지분 투자를 통해 설립했다. 그는 설립 당시 “대한민국의 인재와 일본의 신약개발 노하우를 합쳐 제대로 된 신약을 만들어보자”라는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2000년엔 미국 시애틀에 연구소인 JW 세리악(Theriac·현 미국 보스턴 소재)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발판삼아 2001년엔 국내 첫 임상 3상 신약 1호 항생제 ‘큐록신’ 허가를 획득하는 성과를 냈다.

 2001년 12월 당시 이종호 중외제약 대표는 국산 4호 신약 '큐록신' 시판 성과를 보였다. [사진=JW중외제약]    

JW중외제약은 오늘날까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혁신신약 중심의 R&D 파이프라인을 갖고 치료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주요 신약후보물질 중 기술수출했던 아토피피부염 치료제와 통풍 치료제는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이며, 탈모치료제와 표적항암제 또한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연구되고 있다.

 

그는 "꽃은 아직 안 피었지만, 꽃밭은 내가 만들었잖아요. 그러면 된 거죠. 직원들 앞에서 내가 말한 적이 있어. 내가 죽기 전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 개발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하지만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걸 개발할 수 있는 길이라도 닦아놓으면 나는 만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후 그는 2011년 사재 200억을 출연, 공익 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보건의료 학술연구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공익 법인으로, 지역사회 대상 봉사활동과 기초과학자 주거비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 중이다. 

 

2013년엔 창업자 故성천 이기석 선생을 기리고 고인이 평생 실천했던 생명존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성천상’을 제정, 음지에서 헌신적 의료봉사를 통해 의료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귀감이 되는 의료인을 발굴,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작년까지 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JW중외제약이 기초수액과 같은 필수약 생산과 공급으로 인류의 건강문화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장애인도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를 밝게 만드는 존재”라는 지론 아래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 없이 문화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2015년 국내 첫 기업 주최 장애인 미술 공모전인 JW아트어워드를 제정, 장애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장애인 작가들의 작품 활동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2003년부터 ‘악보를 읽을 수조차 없는’ 중증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를 후원하고 있다. 후원 회장으로서 이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합창단은 2009년 유럽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안톤 브루크너 국제 합창 대회에 직접 참가, 세계인 앞에서 한복을 입고 공연을 선사하기도 했다. 

 

노환으로 영면한 그의 유족으론 아내 홍임선씨와 장남 이경하 JW중외제약 회장을 비롯한 2남1녀(이동하·이정하·이진하)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특1호실(조문은 5월1일 오전 10시부터 가능)이고 발인은 3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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